성인용품의 트렌드와 바뀌는 인식 변화
남·녀 자위기구, 러브 젤, BDSM(결박·구속·사디즘·마조히즘) 용품 등을 취급하는 성인용품 판매점이 음침한 골목길을 넘어 번화가 대로변으로 나오고 있다. 유통 대기업의 매장 한 켠에도 성인용품 코너가 속속 마련된다. 성인용품, 이른바 섹스토이의 산업화 가능성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성인용품’의 정의는 모호하다. 글로벌 시장에선 자위기구와 BDSM 용품 등을 ‘섹스토이’로 구분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산업이다. 글로벌 통계정보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는 2019년 기준 글로벌 섹스토이 시장을 286억4000만 달러로 집계했다. 스태티스타는 이 시장이 지속 성장해 2026년에는 52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 시장은 이제야 막 피어나는 시점으로 평가된다. 아직 시장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된 것이 없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음지에서만 머무르던 시장이 이제 막 양지에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최근 몇 년 새 성인용품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성인용품점’이다. 2017년 이태원에 문을 연 ‘레드컨테이너’가 대표적이다. 성인용품 도매업체 코스모스가 운영하는 이 매장은 붉은색 컨테이너 모양으로 꾸며져 행인들의 시선을 끈다. 이태원을 시작으로 명동, 동대문, 신촌, 홍대, 연남동, 잠실새내, 신림 등 내로라하는 번화가 대로변에 매장을 꾸렸고 이제 수도권을 넘어 지방 대도시에도 진출하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유통채널에도 성인용품 매장이 들어섰다. 신세계 이마트가 만든 삐에로쑈핑과 일렉트로마트에 성인용품점 ‘센스토이’가 입점한 것. 이마트가 최근 삐에로쑈핑의 철수 의사를 밝히면서 일부 매장은 사라지지만 일렉트로마트에 입점한 매장은 영업을 지속할 예정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밀레니얼 세대,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성윤리 의식을 지닌 소비자가 성인용품 시장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며 “이들에게 성인용품점이란 스포츠용품 전문점과 유사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른바 ‘섹스 로봇’ 시대가 오면 성인용품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인용품 사업자들은 지금과 같은 사업 여건이 갖춰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위기구 등의 용품은 정식으로 수입을 할 수조차 없었다. 음란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국 1세대 성인용품 사업자로 통하는 A씨는 “정식으로 수입을 하고 매장을 내서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관에서 판매하는 등 음성적인 시장을 통해 유통됐다”며 “이렇게 유통된 물건은 품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고, 안전사고로 이어지는 등 사회적 부작용이 컸다”고 말했다.
성인용품 업계 종사자들은 섹스토이의 수입을 위해 끊임없이 법정 싸움을 벌였고, 결국 섹스토이에 대한 합법적 수입이 가능한 환경이 됐다. 대법원은 2009년 7월 여성용 진동 자위기구에 대해 “비록 성기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더라도 물건 자체가 사회통념상 일반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정상적인 성적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수입 통관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여성의 성기를 모방한 남성용 자위기구는 2003년 대법원에서 불법 판결을 받았지만 2014년 대법원은 유사한 재판에서 이를 음란물로 보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 발 더 나아가 대법원은 지난해 6월에는 “성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용을 목적으로 한 성기구의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리얼돌’의 수입도 사실상 허가한 상태다.
하지만 합법적 유통이 가능하다고 해서 성인용품 시장이 양성화 됐다고 보긴 어렵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면 산업화로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리얼돌을 비롯한 ‘섹스토이’는 여전히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인격이나 감정이 없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현상(성적 대상화)을 부추긴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시민단체가 리얼돌은 물론이고 남성·여성의 성기를 대상화 한 성인용품이 성적 대상화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성인용품 업체들이 공개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성인용품 시장에는 글로벌 브랜드가 ‘메기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한국법인을 만든 텐가 코리아가 대표적이다. 텐가 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정확한 매출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70%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올해 텐가 코리아의 정식 온라인몰을 통해 판매된 제품 수만 18만5000개에 달한다.
판매량보다 더 주목할 점은 성인용품 시장 양성화에 나서는 텐가 코리아의 전략이다. 이 회사는 최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팝업 스토어를 만드는 등 성인용품의 양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텐가 코리아 측은 “팝업 스토어는 고객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며 “조만간 또 팝업스토어를 열 예정이며 상설매장 설립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텐가 코리아는 2018년 성인용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대규모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텐가 코리아가 이렇게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성 대상화’ 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실 섹스토이의 성 대상화와 관련한 논란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법적으로 제재를 받지는 않지만 논란은 상존한다. 하지만 이같은 논란에서 텐가는 예외다. 이유는 외형만 봐서는 이 제품이 성인용품이라는 것을 유추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자위용품을 주력으로 하는 텐가 제품의 외형은 볼링핀이나 튜브, 달걀 등의 형태를 띄고 있다.
예컨대, 텐가의 베스트셀링 제품인 볼링핀 모양의 ‘오리지널 버큠 컵’의 외부 디자인은 손에 잡기 적절한 정도로 만들어졌다. 내부의 구조 역시 여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것이 아니라 촉각적으로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상부의 공기구멍 역시 기능을 강조한 디자인이다. 자동차 엔지니어 출신인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가 자동차 엔진 실린더의 움직임을 보고 고안한 것이라는 게 텐가 코리아의 설명이다. 텐가 코리아 측은 “텐가의 제품들은 촉각적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능성에 집중해 디자인 됐다”고 설명했다. 텐가의 활동지침에는 “여성이나 남성의 성기를 대상화한 제품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텐가의 이 같은 제품 철학은 글로벌 섹스토이 시장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워치는 글로벌 섹스토이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 이유를 분석하며 기기의 혁신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마켓워치는 “(섹스)토이는 성적인 흥분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장치가 아니라 신체 자체와 그 기구에 대한 반응”이라며 “그러므로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내 성인용품 시장에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도 대중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개팅 앱 ‘글램’을 개발한 큐피스트는 최근 ‘로마(loma)’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로마 오리지널 브랜드로 출시된 ‘캔들’과 ‘머핀’ 등은 기능과 편의성 등으로 최상의 사용경험을 주는 데 집중한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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